몇 해 전 [변호인]이란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 송강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인 송우석 변호사 연기했었다. 영화에서는 부산에서 발생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국밥집 아들인 진우(임시완 분)는 E. H .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다고 해서 용공으로 몰린다. 과연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기에 당시 군부정권은 이 책을 읽는 것을 이토록 두려워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카의 명언은 알고 있다. 가끔은 입시에서도 출제되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를 꿰뚫은 거대한 원리나 법칙 등을 이야기할 것으로 기대를 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는 이런 역사를 보는 거대한 원리나 법칙 등은 언급하지 않는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저자가 정의하는 역사란 사실의 기록보다는 현재의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정확히 기록한 것이 바른 역사라고 본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논쟁에서는 그것이 정확히 과거를 기록했느냐 아니냐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저자는 과거를 정확히 기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는 역사상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을 다 목격할 수도, 기억할 수도, 기록할 수도 없다. 단지 우리는 역사의 한 시점에서 한 사건을 선택하여 주목할 수밖에 없다. 마치 시장의 수많은 생선에서 내가 먹을 생선을 고르듯, 역사의 수많은 사건에서 역사가는 필요한 사건을 골라 기록한다. 그리고 역사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그 일은 그런 결말을 맺었을까?' '왜 그 나라는 그렇게 허망하게 멸망했을까?' 역사가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역사를 해석한다.
그렇다면 역사란 어차피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니다! 역사가는 자신의 주관적인 눈이 아닌, 이 시대의 눈으로 과거를 보고 해석한다. 과거의 사건을 통해 이 시대가 꼭 배워야 할 것, 반복해서는 안 될 것들을 시대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는 사람이 바로 역사가이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역사가의 책임은 너무나도 거대해지고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역사가의 해석에 의해 현재의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역사가가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시각이 아닌, 전체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기에 저자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P46)" 시대의 눈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과거와 대화하는 사람, 그래서 과거로부터 현시대의 교훈과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역사가라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역사 교과서로 인해 온 나라가 뜨거웠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 교과서의 문제를 역사 왜곡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역사 왜곡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역사를 특정한 집단이나 계층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막고,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현시대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가 무엇인지, 우리가 역사를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그리고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